이장희는 1947년 10월 3일 미군정 경기도 수원군 오산면(현 오산시) 출생으로 2021년 기준 75세이다.네살나이에 천자문을 곧 잘 따라하여 아버지가 면서기로 근무하고 있는 동네에서 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6.25 발생 후에 경남 마산으로 이사하여 초등4학년 때까지 마산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했다고 한다.
서울중학교를 거쳐 서울고등학교(18회)를 졸업하고 일주일 간 벼락치기 공부로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후 1971년 DJ 이종환의 추천으로 데뷔했다. 이후 "겨울 이야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 "자정이 훨씬 넘었네", "한 잔의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장희는 과거 음악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1975년 가수 생활을 그만둘 때 우리나라 대마초 파동에 연루됐었다. 그래서 음악을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사업을 하다가 울릉도에서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 당시 가수 신중현, 윤형주, 장현, 김추자 등과 함께 대마초파동에 연루되면서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다. 이장희는 1975년 12월 대마초 상습흡연자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를 회상하며 이장희는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다.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디든 이장희가 (신문) 전면이었다"고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이장희는 "구치소라는게 들어가보면 작은 방이다 끝에 화장실이 하나 있다. 그 위에 작은 창문이 있다. 12월이었는데 아침에 창 밖을 바라다보니 눈이 내리더라. 그걸 보면서 저를 되짚어봤다. '여기까지 왔구나. (음악을) 그만 두라고 하니 그만 두자 이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건 너" 가 박정희 유신정권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이후 "한잔의 추억"등 이장희가 발표한 여러곡 들도 같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자 이장희는 회의를 느껴 가수 활동을 중지했다.
이후 럭키그룹의 기성복제작 업체인 반도패션 매장을 운영하여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바뀌는 시기여서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도패션을 운영하는 중에 후배들의 작곡해 달라는 성화에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 했었지" "장미"를 작곡하여 큰 히트를 쳤다.1988년 김완선 3집을 프로듀싱했고 1989년 김완선 4집에도 이장희가 작사,작곡한 노래(이젠 잊기로 해요)가 있다. 이후 반도패션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1989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 한인 AM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코리아를 설립, 개국하여 2003년까지 사장으로 재임하였다. 1992년 4월에 LA 폭동이 일어났을 적에는 24시간 비상방송을 하며 교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앨범 '그건 너'는 2018년 9월에 음악평론가들이 모여서 정하고 멜론을 통해 발표한 '(세 번째)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74위에 랭크되었다.
그는 "은퇴하면 대자연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울릉도에 방문했다가 그 풍광에 반했다. 농가가 딸린 울릉도 집을 사서 2004년 은퇴하고 정착했다"라고 설명했다
귀국과 함께 귀농을 결심한 그는 경상북도 울릉군으로 이주하여, 경상북도 울릉군민이 되었다. 2010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강호동, 유세윤, 올밴과 토크쇼를 가지기도 하였다. 2011년 5월에는 30년 만에 내놓은 신곡인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싱글로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경상북도 자랑스러운 도민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2월 28일에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